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안토니오 비발디 (문단 편집) === 비발디의 가수 안나 지로 === 비발디의 삶을 거론할때 반드시 등장하는 인물이 바로 수수께끼(?)의 여인, 콘트랄토 가수 안나 지로이다. 그간 안나 지로는 비발디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인물로 인식되었기 때문에 이미지가 좋지 않았는데, 최근에 연구가 진행되면서 그녀를 둘러싼 각종 루머나 부정적인 인식들이 상당부분 잘못되거나 과장되어 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최근까지도 안나 지로는 비발디의 연인이라는 것이 기정사실처럼 알려져 있었는데 현재는 이게 루머에 불과하다는 견해가 우세하다. 또 인터넷을 검색하다 보면 그녀가 비발디의 후광으로 과분하게 출세한 3류 가수 또는 아마추어급 가수라는 이야기가 종종 나오는데 이런 편견은 그녀가 소프라노가 아니라 낮은 음역대를 가진 가수였기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에는 녹음 기술이 없었기 때문에 현재 안나 지로의 목소리를 확인할 수는 없지만 당대의 평에 의하면 안나 지로는 성량이 다소 작은 대신 매력적인 목소리의 소유자였으며 표현력과 연기가 훌륭한 가수였다고 한다. 다만 아무래도 소프라노보다 음역대가 낮은 콘트랄토 성향의 가수였기 때문에 과연 프리마돈나로 적절한지를 두고 당시부터 논란이 있었으며 현재에도 가수로서 그녀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고 있다. 하지만 안나 지로는 비발디 생전에도 비발디 외에 여러 작곡가들이 그녀를 위한 오페라를 작곡했으며 비발디 사후에도 은퇴하기 직전까지 여러 곳을 다니면서 가수로 명성과 인기를 누렸다. 또한 그녀가 주연을 맡은 오페라 상당수가 성공을 거두었다는 사실을 보면 최소한 3류급 가수라고 폄하할 수준은 절대 아니었으며 나름의 장점과 매력을 충분히 갖춘 가수였다고 볼 수 있다. 현재까지 발굴된 자료에 의하면 안나 지로는 만토바에서 1707~1710년 사이에 태어났으며 부친은 나름 재력이 있는 이발사이자 가발 제조업자였다. 안나 지로는 10대 초반인 1720년경부터 20살 연상의 이복 언니 파올리나 지로가 살고 있는 베네치아에서 음악공부를 한 것으로 확인되는데, 이 때 피에타 학교에서 공부했을 가능성이 높다.[* 전술한 것처럼 피에타 학교는 원래 여자 고아를 위한 학교였지만 음악을 공부하기 위해 부모 손에 이끌려 찾아온 소녀들이 꽤 있었다. 안나 지로도 고아가 아니었지만 이런 식으로 피에타 학교에 들어왔을 것이다.] 그녀가 피에타 학교에서 공부한 것이 맞다면 안나 지로는 일찌감치 비발디와 인연을 맺고 있었던 셈인데, 다만 이 때는 비발디가 특별히 안나 지로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안나 지로는 1723년 베네치아 근처의 도시 트레비소에서 가수로 데뷔한다. 이 때 그녀가 공연했던 오페라 '불행한 행운의 님프(La ninfa infelice e fortunata)'는 비발디가 참여한 공동 창작 오페라였는데, 비발디는 이 때 안나 지로라는 존재를 확실하게 인식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듬해 안나 지로는 베네치아에서 [[토마소 알비노니]](Tomaso Albinoni)의 오페라 라오디케(Laodice)에 출연해서 호평을 받았고, 이 때부터 전업 가수로 활동을 시작했다. 안나 지로는 비발디가 베네치아로 돌아온 이듬해인 1726년 그의 오페라 템페의 도릴라(Dorilla in Tempe)에서 에우다미아 역으로 출연하는데, 이 때 조연이었던 에우다미아가 주연이었던 도릴라보다 더 주목을 받게 되자 비발디는 그녀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본격적으로 그녀를 위한 작품을 쓰기로 마음먹는다. 안나 지로는 도릴라의 템페 이후 비발디가 새로 작곡한 13개의 오페라와 성악곡에서 프리마돈나로 활약했으며 비발디의 말년까지 함께 일하게 된다. || [youtube(GKk56K9tz2I, height=300, width=480)] || || 에우다미아의 아리아 "내 사랑에 대한 당신의 대답은 무엇인가"[* "Al mio amore il tuo risponda" 이 아리아는 당시에 큰 인기를 얻었으며 비발디는 자신의 다른 오페라에서 이 아리아를 자주 재활용한다.] || 비발디는 베네치아 외에 베로나 만토바 피렌체 등 이탈리아 내 여러 도시를 다니면서 오페라를 상연할 때도 항상 안나 지로를 데리고 다니면서 자신의 오페라에 출연시켰다. 때문에 사람들은 비발디와 안나 지로가 심상치 않은 사이라고 의심을 하기 시작했으며 비발디의 경쟁자들은 이런 루머를 더 자극적으로 확대재생산해서 퍼뜨렸다. ~~그때나 지금이나~~ 안나 지로가 본격 가수로 활동하기 시작한 시기에 그녀의 나이는 많게 잡아도 10대 후반을 넘지 않은 소녀였다. 때문에 그녀의 이복언니 파올리나 지로가 동생의 보호자이자 매니저 역할을 했고 비발디의 연주여행에 안나 지로가 동행할 때도 항상 파올리나가 따라다녔다. 또 파올리나는 천식으로 고생하는 비발디를 간호하고 가사를 돕는 일도 했다. 그런데 이런 사정이 왜곡돼서 비발디가 두 자매와 동거를 하면서 [[자매덮밥]]을 하고 있다는 괴소문이 돌았고 나중에는 비발디와 안나 지로 사이에 아이가 있다는 이야기까지 등장했다. 하지만 현재 밝혀진 바에 의하면 이들 소문은 모두 근거가 없으며 사실상 음해성 루머에 불과하다. 두 사람이 딱히 사제관계를 넘어 깊이 사귀거나 동거했다는 증거는 전혀 없으며 생전의 비발디와 안나 지로 본인들도 모두 이런 소문을 부인했다. 오히려 이런 소문때문에 두 사람이 좀더 조심해서 행동했을 거라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 애초에 비발디는 세간의 이미지와 달리 기본적으로 방탕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30년간 피에타 여학교에 재직하는 동안 단 한번도 남녀관계로 인한 문제를 일으킨 적이 없었으며 안나 지로와의 괴소문 외에는 딱히 여자 문제가 불거진 적도 없었다. 따라서 비발디가 안나 지로와의 염문설 때문에 베네치아에서 쫓겨났다던가 사제직을 박탈당했다는 이야기는 당연히 잘못된 이야기이다. 생애 항목을 읽어보면 알 수 있듯이 비발디는 죽기 2년 전까지도 베네치아에서 활동했으며 베네치아 사람들은 오히려 그를 도시의 유명인사로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교황청에서도 그와 관련된 루머들을 모두 괴담으로 치부해 버리고 딱히 문제 삼지 않았기 때문에 비발디는 죽을 때까지 사제의 직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즉 안나 지로와의 염문설은 호사가들의 관심사였을 뿐 딱히 비발디의 음악 활동이나 명성에 피해를 입힌 것이 아니었다.[* 다만 생애 항목에 있듯이 이 염문설이 비발디의 몰락에 명분을 제공하긴 했다. 물론 말도 안되는 명분이었지만.] 각설하고, 안나 지로는 1738년부터 창작 활동을 사실상 중단한 비발디를 떠나 독일의 그라츠에서 활동하는데 1740년 비발디가 빈으로 가는 도중에 그라츠에 들렸을 때 두 사람은 다시 만나게 된다. 이 때 비발디는 안나 지로에게 빈에서 자신이 재기하면 다시 함께 음악을 하자고 했고 안나 지로는 이 제안을 받아들여서 비발디와 함께 그라츠에서 빈으로 건너 온다. 하지만 전술한 바와 같이 비발디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빈에서 죽는 바람에 이 제안은 결국 성사되지 못했다. 안나 지로는 비발디 사후에 얼마간 그라츠와 빈을 오가면서 활동했으며 빈에서 그의 오페라 메세니아의 신탁(L’oracolo in Messenia)을 공연하기도 했다. 1742년경 이탈리아로 복귀한 안나 지로는 이 때부터 바로크 오페라 대신 [[크리스토프 빌리발트 글루크]](Christoph Willibald Gluck)나 [[발다사레 갈루피]](Baldassare Galuppi)같은 고전기 오페라 작곡가들의 작품에 주로 출연했다. 1748년, 공연을 위해 피아첸차에 머무르고 있던 안나 지로는 피아첸차의 토박이 귀족이었던 란디 가문의 안토니오 란디(Antonio Maria Zanardi Landi)의 구애를 받게 된다. 당시 돌싱이었던 란디는 안나 지로에게 한눈에 반한 나머지 베네치아까지 쫓아와서 결혼을 하자고 졸랐으며 결국 두 사람은 비밀리에 결혼했다.[* 두 사람은 신분 차이가 있었기 때문에 대놓고 결혼하기는 힘들었다.] 결혼 후 안나 지로는 바로 은퇴했으며 이후에는 그녀에 대한 기록이 전혀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어디서 어떻게 언제까지 살다 죽었는지는 알 수 없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